여행과 심리학
여행 속 숨겨진 심리를 탐험하는 블로그. 떠남의 의미, 문화의 영향, 그리고 내면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하노이 오토바이의 물결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여행은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새로운 환경과 만나 충돌하고, 때로는 놀랍게도 확장되는 심리적 여정입니다. 이 연재는 평범한 여행 경험 속에 숨겨진 심리학적 원리들을 탐색하며, 독자 여러분이 자신의 여행과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베트남 하노이의 혼돈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베트남 하노이 구시가지의 복잡한 교차로를 가득 메운 수백 대의 오토바이들이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모습

경험 이야기

2023년 여름, 베트남 하노이의 구시가지. 이미 오후 4시를 넘긴 시간이었지만, 습하고 뜨거운 공기는 여전했다. 지도를 따라 ‘꽌 안 응온’이라는 유명한 식당을 찾아 좁은 골목길을 한참 헤맨 뒤, 마침내 탁 트인 큰 도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문제는 그 도로를 건너야 식당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도로가 아니라, 마치 거대한 강물처럼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오토바이들의 물결이었다.

수백 대의 오토바이들이 뿜어내는 엔진 소리와 매캐한 배기가스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경적 소리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울려 퍼졌고, 오토바이들은 옆 사람과 부딪힐 듯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질주했다. 신호등은 찾아볼 수 없었고, 횡단보도는 희미하게나마 그려져 있었지만 아무도 그 위를 건너는 이는 없었다. 오토바이들은 행인을 발견하고 멈추기보다, 능숙하게 피해 지나가는 듯 보였다. 도로변에는 현지인 몇몇이 아무렇지 않게 그 오토바이 물결 속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그들은 뛰지도, 멈추지도 않고 마치 유속이 빠른 강물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듯 움직였다.

나는 도로 끝에 서서 5분, 아니 어쩌면 10분 넘게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이건 불가능해!’, ‘저 속에 뛰어들었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로 가득했다. 심장은 쿵쾅거렸고,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옆을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바람에 옷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분명히 건너야 하는 길인데, 이 거대한 오토바이의 흐름 앞에서 나의 평소 ‘도로를 건너는 방식’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었다.

두려움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배고픔과, 식당에 가야 한다는 절박함, 그리고 저 길을 건너지 못하면 식사를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압박감이 밀려왔다. 결국 나는 현지인들이 건너는 모습을 몇 번이고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선을 오토바이에게 고정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똑바로 들고 아주 느리고 일정한 속도로 걸었다. 마치 오토바이들이 알아서 나를 피해 갈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이라도 가진 듯이 말이다.

결심했다. ‘그래, 부딪히는 게 아니면 다 괜찮아.’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망설임 없이 한 발을 내딛었다. 온몸의 감각이 오토바이들의 움직임에 집중되었다.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오토바이, 뒤에서 다가오는 소리, 왼쪽에서 튀어나오는 불빛. 평소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순간 오토바이들은 정말로 나를 피해갔다. 너무나 가까이 지나가서 옷깃이 스치거나 팔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지만, 단 한 대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나는 이 강렬한 흐름 속에서 마치 물고기처럼 유영하며 반대편 도로에 도착했다. 심장은 여전히 격렬하게 뛰었지만, 그 안에는 묘한 해방감과 성취감이 차올랐다. 단 30초 남짓의 순간이었지만, 그것은 하노이에서 가장 길고도 강렬한 시간이었다.

✨ 깨달음의 순간

도로를 다 건너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오토바이들이 나를 피해 갔던 이유는 내가 멈추거나 급하게 속도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흐름에 ‘개입’하여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 속에서 ‘일관된 속도로 움직이며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었다. 교통의 흐름을 내가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나의 움직임을 예측 가능하게 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나를 인지하고 반응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베트남의 도로 위에서 배웠다.

오토바이 물결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는 한 여행자의 뒷모습

심리학적 분석

1. 인지심리학적 관점: '스키마'의 충돌과 '인지 재평가'

하노이 도로를 건너는 경험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데 사용하는 정신적 틀, 즉 스키마(Schema)가 어떻게 작동하고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도로를 건너는 스키마’는 신호등이 초록불이거나 차량이 정지했을 때 건넌다는 규칙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하노이의 상황은 이 스키마와 완전히 충돌했습니다. 익숙한 정보 처리 방식이 통하지 않자, 뇌는 과부하 상태에 빠지고 불안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들의 방식을 모방하면서, 새로운 ‘하노이식 도로 건너기 스키마’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는 위협적인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인지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의 과정입니다. ‘오토바이 강물’은 더 이상 멈춰 세워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흐름 속에서 함께 움직여야 할 환경으로 재해석된 것입니다.

2. 사회심리학적 관점: '관찰 학습'과 '문화적 규범'의 습득

필자가 하노이 도로를 건넌 과정은 전형적인 관찰 학습(Observational Learning)의 예시입니다. 알베르트 반두라(Albert Bandura)의 사회 학습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 결과를 내면화함으로써 새로운 행동을 학습합니다. 현지인들이 오토바이 물결 속으로 느리고 일관된 속도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이것이 하노이 교통의 문화적 규범(Cultural Norms)임을 인지하고 자신의 행동 모델로 삼았습니다. 이 규범은 ‘보행자가 멈추면 오토바이 운전자도 혼란스러워하므로, 일관된 움직임을 유지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포함합니다. 개인의 안전이 타인과의 상호작용 방식, 즉 사회적 규범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을 경험한 것입니다.

3. 발달심리학적 관점: '자기 효능감'의 증진과 '성장 마인드셋'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노이 도로를 성공적으로 건넌 경험은 필자의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크게 증진시켰습니다. 자기 효능감은 특정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개인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과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다는 성취감은 ‘나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도 적응하고 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기 인식을 강화합니다. 이는 또한 캐롤 드웩(Carol Dweck)이 이야기한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의 발현이기도 합니다. 고정된 능력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학습과 성장의 기회로 인식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태도가 발휘된 것입니다. 이렇듯 여행은 우리를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믿음을 키우는 계기가 됩니다.

🔍 심층 이해
핵심 메커니즘: 익숙한 인지 스키마가 깨지고 새로운 환경에 맞는 인지 재평가를 통해 적응하며,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고 성공적으로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자기 효능감을 증진시키는 심리적 작동 원리
일상 연결: 새로운 직장, 낯선 커뮤니티,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 겪는 혼란과 적응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감을 얻는 경험과 유사
성장 포인트: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 향상
💡 독자 적용
관찰 포인트: 낯선 환경에서 현지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들의 암묵적인 규칙은 무엇인지 주의 깊게 관찰해 보세요.
활용법: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을 때, ‘내가 이전에 알던 방식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고, 주변에서 답을 찾아 자신의 행동을 재평가해 보세요. 작은 성공 경험이 다음 도전을 위한 큰 동기가 됩니다.

여행의 심리학적 의미

하노이에서 길을 건너는 경험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을 넘어, 우리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일상에서는 익숙한 환경과 예측 가능한 규칙 속에서 살아가지만, 여행은 이러한 안전지대를 벗어나 우리를 미지의 상황으로 내던집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고정관념과 마주하고, 새로운 학습을 통해 이를 확장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획득합니다. 오토바이의 물결 속으로 발을 내딛는 용기는 낯선 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신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은 이처럼 우리를 더 유연하고, 대담하며, 삶의 예측 불가능성에 기꺼이 맞설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 연재 포인트

이 경험은 통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인지적, 사회적, 개인적 심리가 작동하며 성장을 이끌어내는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의 여행 속에서 예측 불가능했던 순간, 두려웠던 도전, 그리고 이를 극복하며 얻은 깨달음은 무엇이었나요? 다음 연재에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낯선 이의 친절이 우리의 '사회적 편견'을 어떻게 깨뜨리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눌 예정입니다.